성경 묵상과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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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

① 성경묵상 :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같이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말씀 하나하나로 온 세상을 다 만드십니다. 아주 능력이 있으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기에다 깔끔하게 정리하시는 것도 좋아하십니다. 혼돈 속에서 시간을 분리하십니다. “빛이 생겨라” 하신 것은, 시간과 공간조차 한 덩어리로 존재 했던 것에서 시간을 분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생기면서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밤과 낮이 계속 반복됩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궁창 위의 물과 아랫물을 구분하고, 땅과 바다를 구분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면서 “보시니 좋았다.”고 하십니다. 세상 안의 온갖 것들을 다 만드시고 최고 절정으로 당신과 비슷하게 당신 모습으로 인간을 만드십니다. 그 전에 다른 피조물들을 만드실 때에는 “~가 생겨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표현이 반복되는 반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하느님께서 혼잣말하시듯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시고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표현으로 마무리하는 듯 보입니다. 이어서 번성하고 지배하라고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어지는 2장은 인간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해줍니다. 하느님은 다정다감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손수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넣어 사람이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게 하십니다. 그 인간이 살아가도록 에덴 동산을 꾸미시고 온갖 나무들을 만들어 인간 주위에 두십니다. 그리고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십니다. 그렇게까지 해 주셨지만 하느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기로 작정하시고 온갖 짐승과 하늘의 새들을 빚어 만들어 사람에게 데려다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자 사람을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십니다. 여자를 사람에게 데려오자 사람은 처음으로 입을 열어 탄성을 지릅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신 협력자로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면 누군가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는 서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같이 사는’ 방법을 새롭게 근본 바탕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침묵과 고독을 강요당하는 요즘, 함께 사는 것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② 성경 읽기: 창세 2,4-25; 창세 1,1―2,4

창세기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를 전합니다. 2장에서 하느님은 인간처럼 행동하시며 세상을 만드십니다. 반면 1장의 하느님은 절제된 행동으로 말씀으로만 창조하십니다. 두 창조 이야기는 하느님이 갖고 계신 모습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다 필요합니다.

2주차 :

① 성경묵상 :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낫게 하시는 주님)

코로나가 우리에게 드러난 지 이제 7개월째가 되어가는데, 우리는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20년 전만 해도 암에 걸리면 거의 모두 죽는 줄 알고, 암 진단을 받으면 사형선고를 받은 듯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제도 있고, 수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은 코로나가 독한 감기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두려워 합니다. 일단 치료제가 없어 살 수 있다는 100% 확신을 가지기 어려워서입니다. 둘째로, 일부는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인 셈입니다.

지금 같은 팬데믹 상황에 하느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낫게 해 줄테니 걱정말라!’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던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한 가지 예가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재앙을 겪고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빠져나와 갈대 바다를 건너고 나서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갈대 바다를 떠나 수르 광야로 나아갔을 때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사흘 정도 걸었고 마실 물이 없어 불평을 터뜨리는 백성들에게 나무 하나를 보여주시고 그것을 물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물이 되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쓰다’는 뜻을 지닌 ‘마라’라는 곳에서 말입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은 백성들에게 규정과 법규를 만들어 주시고 백성을 시험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을 잘 들으면,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면, 이 모든 규정을 잘 지키면” 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집트에서 내린 어떤 질병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이집트에서 여러 가지 재난과 질병을 겪었습니다. 개구리, 모기, 등에, 메뚜기 소동에 우박이 쏟아지게도 하셨습니다. 가축병이 들어 이집트의 집짐승들이 모두 죽고, 종기가 퍼져 사람과 짐승이 해를 입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런 재앙이 내릴 때 재앙은 이집트 사람에게만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그런 재앙과 질병이 내려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주님을 잘 섬기면 어떤 질병도 내리지 않으실 것이고 혹시 병에 걸리면 낫게 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주님을 잘 섬기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② 성경 읽기: 탈출 15,22-27; 탈출 6,28―12,51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하느님과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파라오에게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신 하느님은 이집트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재앙 이야기를 통해 주님이 하느님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