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신부 교구 성서사목부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신자가 […]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필리 3,8)를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한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거룩한 전례를 통해서나, 영적 독서를 통해서나, 또는 […] 적합한 성경 강좌와 다른 방법을 통해서 기꺼이 성경에 다가가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헌장, 25항)

  1.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과연 읽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집에 성경이 있습니까? 그 성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책장 안에 ‘모셔둔’ 성경은 그냥 나를 드러내기 위한, 내가 신자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장식품일 뿐입니다. 펼쳐지지 않고 읽히지 않는 성경은 신앙의 경전으로서가 아니라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과 같은 여러 책 중의 하나로 취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손이 닿는 곳,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펼쳐서 읽어야 합니다.

  2. 그러면 묻습니다. “왜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미사와 전례에 충실히 참여하고, 고해성사도 정기적으로 하고, 자주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성사와 전례는 우리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고, 그 집전과 참여를 통해 주님의 구원 은총을 전달해줍니다. 또한 전례문의 대부분은 성경과 교부들과 교회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있어, 그 말마디만 잘 들어도 훌륭한 교리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신부님들의 강론도 훌륭한 신자들의 삶의 양식입니다.

2.1.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성경을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당대의 언어인 대중 라틴어로 옮기신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계시의 원천인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느님이 누구신지, 주님이 누구신지, 주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히브 1,1 참조)이 누구신지, 우리가 믿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면 성경을 펼쳐 읽어야 합니다. 계시, 곧 하느님이 누구신지 당신 스스로 우리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탈출기는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찾아와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서간들은 성령 안에서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주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를 주님의 교회 안에서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시의 원천에 가닿지 않으면, 아무리 교리를 잘 알아도 그 근간이 되는 말씀을 모르는 것이기에, 그 지식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찬찬히 읽으며 곱씹지 않으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우리와 관계 맺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알려주시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저 사회통념이 가르쳐주는 ‘상상의 신’ 또는 자신이 원하는 ‘절대자로서의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착각하기에 이릅니다. 우리 ‘신앙의 하느님’이 아닌 ‘자신이 만든 하느님 상(像)’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모든 우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주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알아뵙기 위한 것입니다.

2.2.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 또 다른 이유는 제대로 된 신앙의 실천 방향을 찾음으로써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냥 책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경전입니다. 곧 우리 신앙인의 삶의 지표입니다. 이 경전으로서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신앙의 방향을 잃고 성장하지 못한 채로 머물게 됩니다. 신앙에는 실천들이 따릅니다. 전례와 성사의 참여, 기도와 선행의 실천,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삶, 가정의 성화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앙에 따른 것, 곧 믿음에 따른 실천들입니다. 기본적인 인간 정서와 사회 도덕의 학습은 우리에게 선행을 실천하고 약한 이의 벗이 되어야 한다고 충동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다릅니다. 우리는 양심의 충동으로 행동하지만, 내가 만나고 돕고 함께 하는 이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봉사하고자 움직입니다. 주님을 만난 듯, 주님의 손을 잡듯 다른 이를 대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실천입니다. 그러한 실천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실천이 말씀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우리는 여느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자주 봅니다. 일례로 ‘생활다시보기(Review of life)’를 하다 보면, 예수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찾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성경의 말씀에 익숙하지 않으면, 복음에서 말씀과 행적으로 당신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이 아닌, 엉뚱한 상상 속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덕가, 철학자로 주님을 전락시키는 경우를 만납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니, 예수님은 선하시니 “아마도” 이렇게 하지 않으실까?’ 그러면서 복음에 따른 행동이 아닌, 윤리도덕적인 행동을 자신의 실천 방향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의 선택은 선하고 옳은 것일 수 있지만, 복음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자부심도 느끼고 세상의 칭찬도 받겠지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의 길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습니다. 자칫 조금만 빗나가면 부드럽고 따뜻한 신앙인이 아닌, 딱딱하고 차가운 도덕주의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들려온 말씀이 떠오릅니다. “집어라, 읽어라.”(Tolle, lege) 성인의 눈에 성경이 들어왔고, 그는 이를 펼쳐 읽으며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의 길을 가르쳐주며 주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줍니다.

  1. 예,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성경 독서에 주의할 점이나 꼭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까?

3.1.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읽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 대한 신뢰와 흠숭(무한의 존경)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겸손한 경청의 자세)로 성경을 펼칩니다.

3.2. 성경을 읽을 때는 언제나 짧은 기도로 시작합니다. 간단하게 주 성령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진리를 깨우쳐주시는 분은 언제나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3.3. 이제 읽기에 들어갑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소리 내어 읽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입술만이라도 움직이며 읽습니다. 눈으로만 읽으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말들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읽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3.4. 읽을 때는 앞뒤 문맥을 살피며 전체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읽습니다. 단어나 문구의 의미에 매달려 본래의 말씀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합니다.

3.5. 독서가 일단락되면 그대로 멈추어 30초에서 3분 정도 가만히 머뭅니다. 침묵의 시간입니다. 이는 성경 독서의 필수 요소입니다. 나의 생각을 멈추고 주님께서 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나를 맡기는 것, 그것이 바로 침묵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건네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멈추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내가 원하는 말씀을 스스로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들려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3.5.1 시간이 허락한다면 묵상으로 들어갑니다. 많은 이들이 말씀을 ‘듣고’(성경을 읽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 내게 떠오른 어떤 사건이나 인물, 나의 모습을 살피며, 말씀에 따라 변화되어야 할 점을 찾습니다. 이것도 훌륭한 묵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묵상은 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나’와 ‘나와 관련된 것’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님께 여쭙니다. “주님, 이 말씀을 통해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왜 제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까?”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그리고 침묵 속에 머물며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에게 집중하지 말고 주님, 그분께 집중하며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3.6. 침묵(과 묵상)을 마치며 다시 간단한 마침기도를 바칩니다. 긴말이나 장황한 말은 피하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됩니다(예 :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로 마칩니다.

3.7. 성경독서는 단지 성경을 읽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변화 성장하기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합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는 삶을 추구함으로써 세상 안에서 주님을 증언하는 자가 될 때, 우리의 성경 독서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3.8.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무한의 존경과 신뢰의 마음으로, 겸손한 경청의 자세로 성경을 대하라. ②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 ③ 소리 내어 읽어라. 자구나 문자에 매달리지 말고 전체적인 뜻과 맥락을 생각하며 읽어라. ④ 멈추어 침묵 속에 머물며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⑤ 감사의 마음을 담은 짧은 기도로 마치라. ⑥ 말씀을 통해 얻은 바를 실천하려 노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