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명
해설단 최미숙 미카엘라 010-5612-4110
독서단 정일윤 크리스티나 010-9339-4359
성가단 이송민 소피아 010-4431-9779
성체분배회
제대회 한형자 세실리아 010-3613-7841
헌화회 홍봉숙 유스티나 010-8177-1110
복사자모회 박진선 세실리아 010-4291-6332
성인복사회 박춘숙 카타리나 010-8774-7948
반주단 김민서 마틸다

영화 ‘노스텔지어' 에서 세상 구원을 위해 촛불 하나 들고 온천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연약한 촛불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꺼지고 꺼지고를 반복하며 그 때마다 처음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허망함 속에서도 끝끝내 촛불을 반대편으로 운반함으로서 '세상의 구원'을 가져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야기입니다. 촛불이 뭐라고… 구원을 이루고 말고가 결정되는지요. 여러가지 불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촛불이 왜 구원을 위한 중요한 쓰임이 되어야 했는지 의아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촛불은 더 뜨거운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몇 년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의 바다를 기억합니다. 사람들이 함께 잡은 촛불에는 권력을 넘어서 구조를 변화시키는 엄청남이 있었습니다. 외신들은 ‘촛불 혁명’이라 보도했습니다. ‘촛불 혁명’이 위대한 이유는 연약한 불들이 모여 부당한 권위와 권력과 맞서면서도 평화의 자리에서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불완전함이 있지만, 촛불이 가져온 놀라움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 입니다.그리고 바로 이 한국의 촛불은의 처음이 바로 효순 미선 사고를 추모하고 규탄하는 촛불집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2년, 대한민국은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예상하지 못한 선전에 이전 시대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광장 응원을 합니다. 흥으로 가득찬 축제의 절정으로 향하는 포루투갈 경기를 하루 앞둔 6월 13일 양주 시골길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집니다. 당시 사고는 월드컵의 열풍으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고 처리가 상식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으로 인해 비상식적인 부당함이 용인되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화나게 하였습니다. 응원의 광장은 촛불의 광장으로 변합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사라진 현실에서 ‘탱크라도 구속하라’라는 외침이 지금도 깊게 기억됩니다.

수 년 전, 부산 ‘민주 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을 설명하는 전시관을 따라가다 보면 중요한 변곡점으로 ‘효순 미선’ 사건이 설명됩니다. 처음에는 반가웠습니다. 먼 지방에서 우리 지역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궁금해졌습니다. 당사자인 우리는 왜 이야기 하지 않고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가? 최초의 장소이고 오랜 시간 동안 촛불의 장소 였던 의정부에서는 어느 한 곳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데 멀리 타지에서 발견되는 설명대 앞에서 마냥 뿌듯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경기 북부 지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변화된 지역입니다. 군사 지역이기도 했고 미군과도 깊은 관계를 가진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발전과 발달에 미군의 주둔은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좋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따른 어두움과 아픔이 항상 존재합니다. 현재 정의평화위원회 월례미사가 봉헌되는 의정부 사적지 성전은 미군이 지은 성당으로 지방 사적지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역사니까요. 그러나 성당 만큼이나 중요한 ‘두레방’이나 동두천의 ‘성병관리소’건물은 짐짝 취급당하며 당장이라도 철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이야기니까요. 우리의 이야기에는, 우리의 기억에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자리잡아야 좋은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따르는 신앙인이 부활만 이야기하고 십자가 수난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상한 신앙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난과 부활을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다시금 마음의 촛불을 하나 밝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