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3일)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집회 7,32)

  1. 이번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이 예기치 않게 들이닥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우리는 심한 당혹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를 향한 손길은 결코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손길은, 가난한 이들을 더욱 잘 알아보고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자비의 도구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갈고 닦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향하여 먼저 내밀어 주는 손길을 우리가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는 많은 확신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유의 제약도 경험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더욱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사랑하는 이들과 예전이라면 평소에 늘 만나던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도 잃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것들을 불현듯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하여 의문이 들면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집 안의 침묵 속에 머물면서 소박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오롯이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 돕고 존중할 수 있는 새로운 형제애가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책임이 …… 있음을 다시 깨달을” 좋은 때입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윤리, 선, 신앙, 정직을 비웃으며 도덕적 타락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 사회생활의 기초가 무너지면, 인간이 개인적 이익을 지키려고 서로 다투게 되고,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잔인함이 발생하며, 환경 보호를 위한 참다운 문화의 증진이 저해됩니다”(찬미받으소서, 229항). 요약하자면, 우리가 각자 이웃과 모든 사람을 향하여 느껴야 하는 책임감을 일깨우지 않는 한, 경제와 금융과 정치의 심각한 위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

  2.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 따라서 이 말씀은, 자신이 공동의 숙명에 동참하고 있음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저마다 지닌 책임감으로 부르는 초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약한 이들의 짐을 짊어지라는 권고입니다. 이는 바오로 성인의 다음과 같은 말씀과 일치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 5,13-14; 6,2).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자유는 다른 이들, 특히 가장 약한 이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우리의 책무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여기에서 또다시, 집회서가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집회서는 가장 힘없는 이들을 돕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먼저, 집회서는 슬퍼하는 이들의 약한 처지를 고려합니다. “우는 이들을 버려두지 마라”(집회 7,34).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 시기에, 우리는 엄격한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친구나 지인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젖어 있어도 그 곁에서 위로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집회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병자 방문을 주저하지 마라”(집회 7,35).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우리 존재의 나약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결코 안주하지 말고 계속 사랑의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합니다.